◇ 마음까지 다쳤을 아내에게. ◇
어느덧 결혼한지 20년이 훨씬 넘어 버렸고.
당신 두 아이를 잘 키워줬고
나에게도 무던히 잘했는데.
우린 이제 당신께 무엇을 하지?
지켜보는 난 많이…….
아니 매일 마음 아프길 제쳐놓고
가슴이 너무너무 아려.
3년 전 당신이 뇌종양으로 수술하면서
혹 죽을지도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희망이 있다고
수술실을 겁 없이 들어갔는데.
올해 또 한 번 그 어렵다는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며.
그나마 실질적으로 진전이나 있다면
그나마 다행일 텐데.
앞을 잘 보지 못해 집에만 있는 게
벌써 3년이 흘러버렸네.
우리는 하루 아니 한 시간도
앞을 못 본다 하면 미칠 것 같은데
아니지 못살 것 같은데 죽을 것만 같은데
그렇게 답답하면서도 별 짜증 없이 대하는 당신께
나는 우리는 무엇을 하지
우리 집이니까 구조를 아니까
더듬거려 다니는 당신!
수술할 때보다 지금 지켜보고 있는
이 순간이 얼마나 더 힘든지 몰라
보이지도 않으면서 자식들 위해
오로지 직감으로 손끝의 감각으로
반찬도 만들어 보고 밥도 해보고
식탁에 그릇을 못 보고 놓쳐
깨뜨리는 당신을 보면
아이들 얼굴을 못 보는 게 제일 서럽다는
당신의 그 말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와
가슴이 미어져
화장실을 가도 더듬어 가며
혼자 해보려는 당신이 날 더 아프게 만들어.
왜 걸리는 말들이 행동이 이것밖에 없겠어
할 말이 없고 너무너무 속상해
차라리 어느 곳 한군데 부러지고 찢어졌다면
차라리 그렇다고나 하지
요즘 밖에 못 나가 누렇다 못해 핼쑥한 당신이
아니 하늘이 미워지기도 해
여보, 나는 믿어
조금 더 쬐끔 더 있으면 하늘도 무심치 않으면
하나님이 계신다면 당신께
많이도 바라지 않는다는 조금의 시력을 주실 거라고
그날까지 나와 아이들이 기도할게…….
하나님께 많이 기도할게.
해줄 게 그것밖에 없어
4월8일 결혼기념일…….
당신과 함께한 날들 후회스럽지 않게 열심히 살게
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
당신 말이 오늘 더욱 슬프게 해
미안하고 많이 고마워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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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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